중국은 지난 십여 년간 내연기관(ICE) 자동차 시대의 후발주자에서 신에너지차(NEV: New Energy Vehicle, 순수전기차(B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수소연료전지차(FCEV) 포함)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극적인 변신을 이루었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요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적 개입, 폭발적인 시장 수용성,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의 빠른 기술 발전, 그리고 치열한 내수 경쟁이라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결과이다. 중국 정부는 에너지 안보 확보, 심각한 도시 대기오염 해결, 그리고 기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꿀 기회로서 NEV를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막대한 보조금 지급, 세제 혜택, R&D 지원, 충전 인프라 구축, 핵심 공급망 확보 등 전방위적인 지원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초기 정부 주도 구매와 대도시 중심의 보급에서 시작된 시장은 개인 소비자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었으며, 가격 경쟁력, 주행거리, 충전 편의성, 스마트 기능 등 다양한 요인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CATL, BYD 등 자국 기업들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 혁신(Cell-to-Pack, Blade Battery 등)과 수직 계열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E-파워트레인, 차량용 OS, 자율주행 기술 등에서도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의 중국 진출은 '메기 효과'를 일으켜 자국 브랜드들의 기술 개발과 경쟁력 강화를 촉진했으며, 현재 중국 시장은 BYD를 필두로 한 기존 강자와 NIO, XPeng 등 스타트업, 화웨이, 샤오미와 같은 IT 기업까지 가세하여 극심한 가격 경쟁과 시장 통합이 진행되는 '경쟁의 용광로'가 되었다. 이러한 내수 시장에서의 단련을 바탕으로 중국 NEV 기업들은 유럽,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각국의 무역 장벽(관세 등), 브랜드 인지도 부족, 현지 규제 및 서비스망 구축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본 보고서는 중국 NEV 산업의 성공 요인과 현재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향후 산업의 발전 방향과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전망한다.
중국 신에너지차(NEV) 전략의 기원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은 급증하는 석유 수입 의존도로 인한 에너지 안보 문제, 주요 도시의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 그리고 전통적인 내연기관(ICE) 자동차 기술에서 서구 및 일본 기업들에 비해 뒤처진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중국 정부는 전기화를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닌, 기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기술적 도약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산업 전략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2001년 제10차 5개년 규획 기간 중 시행된 국가고기술연구발전계획(863계획)에서 '에너지 절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 프로젝트'가 포함되었고, '3종 3횡(三纵三横)'이라는 초기 기술 로드맵이 제시되었다. 이는 NEV 기술 개발에 대한 국가적 관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후 2009년 발표된 '자동차 산업 조정 및 진흥 계획'에서는 NEV 육성을 국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공식 선정하며 정책적 의지를 명확히 했다.
NEV 산업 육성은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와 같은 국가 거시 전략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추진되었다. 2015년 발표된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을 제조 강국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청사진으로, NEV 및 전력 장비를 10대 핵심 육성 산업 분야 중 하나로 지정했다. 이는 NEV 산업이 단순한 자동차 산업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 제조업 혁신과 경쟁력 강화의 핵심 동력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전략은 혁신 능력 제고, 품질 향상, 정보화와 공업화의 융합, 녹색 성장 등을 제조업 전체의 공통 과제로 제시하며 NEV 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반을 강조했다.
이러한 거시 전략 하에 구체적인 NEV 산업 발전 계획들이 수립되었다. '에너지 절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 규획(2012-2020년)' 과 후속 계획인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 규획(2021-2035년)' 은 중국 NEV 산업의 장기적인 비전과 단계별 목표를 제시했다. 초기 계획(2012-2020년)은 주로 시장 규모 확대(예: 2020년까지 NEV 누적 500만 대 보급 목표)와 핵심 기술 확보에 중점을 두었다.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 규획(2021-2035년)'은 더욱 구체적이고 야심 찬 목표를 설정했다.
이러한 목표 설정은 중국이 단순히 전기차를 보급하는 것을 넘어, 핵심 기술력 확보, 산업 생태계 구축, 그리고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진핑 주석이 2020년 UN 총회에서 발표한 2030년 탄소 배출 정점 및 2060년 탄소 중립 목표는 이러한 NEV 중심의 산업 전환을 더욱 가속화하는 동력이 되었다.
중국의 NEV 전략이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선 핵심 산업 정책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존 ICE 기술에서 서구/일본 기업들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에 , 중국은 전기화라는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통해 자국의 강점(제조 규모, 잠재적 배터리 우위)을 활용하고 기존의 약점을 우회하여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고자 했다. '중국제조 2025'에 NEV를 핵심 분야로 포함시킨 것 과 초기부터 핵심 기술 개발을 강조한 점 은 기술 자립과 산업 패권 장악이라는 전략적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여러 5개년 계획 과 2035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계획 을 통해 제시된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야심 차게 변화하는 목표들은 중국 국가 주도 시스템의 특징인 장기적 비전과 정책적 일관성을 보여준다. 이는 보조금 사기 나 시장 과열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투자와 정책 지원을 가능하게 했으며, 정치적 주기가 짧은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잠재적인 이점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NEV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 도구를 활용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구매 보조금 정책은 시장 활성화의 핵심 동력이었다. 초기에는 소비자가 아닌 자동차 제조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여 출고가를 낮추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 이는 소비자들이 NEV를 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부 지원의 총 규모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상당한 수준이었음은 분명하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약 14년간 지급된 보조금 총액은 약 2000억 위안(약 38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있으며 , 다른 분석에서는 2023년까지 총 지원 규모(구매 보조금, 세금 감면, 인프라 지원, R&D 지원, 정부 조달 등 포함)가 2,309억 달러(약 300조 원 이상)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막대한 보조금은 NEV 시장의 초기 성장을 견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보조금 정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초기(2009년~2017년경)에는 보조금 규모가 매우 컸으나 , 2018년부터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보조금 지급 기준을 단순히 판매량에 두지 않고, 주행 가능 거리, 배터리 에너지 밀도 등 기술적 요구 조건을 강화하여 기술 혁신을 유도하고 저품질 차량 난립을 방지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2017년 평균 약 35%에 달했던 판매 가격 대비 보조금 비중은 2021년 평균 약 10%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 국가 보조금을 받는 NEV 비중도 2017년 78%에서 2021년 47%로 감소했다. 이러한 점진적인 축소 끝에 중앙 정부의 직접적인 구매 보조금은 2022년 말(2023년부터) 완전히 폐지되었다.
직접 보조금이 폐지되면서, 정부는 다른 형태의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대표적인 것이 구매세(취득세) 면제 정책이다. 10%에 달하는 차량 구매세 면제는 2014년부터 시행되어 왔으며 , 여러 차례 연장되어 2027년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간 예상되는 총 감면액은 5,200억 위안(약 1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금 감면 패키지이다. 이러한 세금 감면은 보조금 폐지 이후에도 NEV 수요를 유지하고 시장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방 정부 차원에서도 별도의 구매 인센티브나 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NEV 보급을 지원했다.
구매 관련 인센티브 외에도 R&D 지원이 중요한 정책 도구였다. 정부는 863계획 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통해 배터리, 전기 모터 등 핵심 부품 기술 개발을 지원했다. 이는 단순히 차량 구매를 촉진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한 투자였다. 중국 정부의 산업 보조금은 R&D 지원, R&D 세제 혜택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 특정 기업(예: 배터리 기업)에게는 연 매출의 일정 비율 이상을 R&D에 투자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